崔千有
미상 ~ (1908)·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천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춘천(春川)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는 등 식민지화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공격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최천유는 이같은 시기인 1907년 가을 강원도 춘천에서 안종우(安鍾雨)·송관영(宋寬永)·김양현(金養鉉)·김순선(金順先)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해 12월 중순이래 부하 600여 명을 이끌고 강원도 화천(華川)·양구(楊口)·인제(麟蹄) 등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최천유 의진은 1908년 1월 2일 등정(藤井) 소위가 인솔하는 일본헌병대 양구분견대와 임당리(林塘里) 범동(犯洞)에서 조우하여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최천유 의진은 크게 패하고 부하 이인금(李寅今) 이하 60여 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붙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같은 해 음력 5월 양구군 진목정(眞木亭)에서 일본군 춘천수비대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5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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