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忠臣
(189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충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8일 수지면 고기리(古基里) 구장 이덕균과 안종각 등은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30일 아침 마을 사람들 1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동천리(東川里)에 갔다. 동천리 주민이 합세하여 300여 명에 이른 시위행렬은 오전 11시 30분 무렵 풍덕천리(豊德川里)를 거쳐 수지면사무소에 나아가 만세를 불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오후 2시 무렵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용인군 내 여러 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만세 행렬이 읍산면(邑山面) 마북리(麻北里)로 행진하던 중 일본 헌병과 대치하였다. 헌병이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군중은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헌병들이 발포하여 2명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동천리에 거주하던 최충신은 이러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4월 28일 용인헌병분대에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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