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泰亨
(189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태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5년 음력 11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에서 자립단(自立團)에 가입하여 활 동하였으며, 1920년 8, 9월경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입하여 교통 부원(交通部員)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5년 음력 11월 5일 함경남도 단천군 수하면(水下面)에서, 강명환(姜明煥), 최석희(崔錫熙), 이홍용(李洪容), 방주익(方周翼), 박승혁(朴承赫) 등이 단천군 단천읍을 중심으로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광복할 목적으로 발의한 자립단에 가 입하여 동인들과 동단의 맹약, 임원 선정 등에 관한 협의를 하였다. 이 활동으 로 체포되어 1916년 4월 17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보안법(保 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1920년 음력 8, 9월경 함경남도 단천에서 조덕윤(趙德潤)의 권유를 받고, 중국 장백현(長白縣)에 소재한 대한독립군비단에 가입하여 본단의 교통부원으로 군 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6일 구류되어 1921년 7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1919년 제 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받고 옥고 를 치르다가 1923년 1월 2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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