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台煥
1894-10-1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최활석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태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1월경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에 사는 김창렬(金昌烈)로부터 중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하던 『독립신문(獨立新聞)』 활판(活版) 제작을 위한 기부금 모집을 의뢰받았다. 이를 수락하고 같은 해 음력 4~5월 사이 순사 출신이자 평원청년회(平原靑年會) 회계인 정창원(鄭昌元) 등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朝雲面)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최태환 등은 「구국의연금 모집 격문」이라는 제목의 격문을 만들었다. 1920년도에 총 1억 5천만 원을 모집해 비행기와 무기 등을 구입하여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920년 4월 상순 이래 평원군 조운면의 김병표(金炳杓) 등으로부터 다수의 독립운동자금을 기부 받았다. 모집한 1,800원을 독립운동자금 명목으로 김창렬에게 건네주고 영수증을 건네받았다. 최태환은 이런 활동을 하다가 평원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0월경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는데, 1심에서 ‘강도죄(强盜罪)’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즉시 공소(控所)를 제기했다. 12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공갈죄(恐喝罪)’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21년 1월 27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수감생활을 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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