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學先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최학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는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의병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908년경 양모 의병장은 6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경주군(慶州郡) 산내면(山內面)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양모의진은 5월 11일 산내면을 떠나 언양군(彦陽郡)을 향하여 이동하였다. 40명의 의병과 함께 밀양군(密陽郡)으로 향하던 중 12명의 의병이 고현산(高賢山)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의병 1명이 사망하고 다른 의병들은 흩어졌다. 최학선은 양모의진에 속하여 1908년 2월 중 영덕군·청하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4월 중 청도군 정자동(亭子洞)에서도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13일에는 청도군 마일동(馬日洞)에서 동장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大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