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奎煥
1893-03-29 ~ 1935-05-0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규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중국 상해(上海)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려고 망명을 기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규환은 1919년 7월 초순경 경북(慶北) 상주군(尙州郡) 청리면(靑里面) 소재 임춘근(林春根)의 집에서 김영기(金寧基)로부터 '지금부터 상해 임시정부에 가서 독립운동을 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자'는 권유를 받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동년 8월 김천군(金泉郡) 김천면(金泉面) 성내정(城內町) 소재 김사순(金史淳)의 집에서 동지 남진희(南珍熙),이언강(李彦綱) 등과 만난 것을 시작으로 동년 9월까지 김천군 일대에서 수차례 동지들과 비밀모임을 하였다. 이들 모임에서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 등을 협의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2월 10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이른바 대정 8년 제령 제7호 위반 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사의 공소로 1920년 3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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