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秉浩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병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에서 평양결사단(平壤決死團) 청주지부 명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2월 17일 청주군 남이면(南二面) 석실리(石室里)의 유영창(柳永昌)의 집에서, 동인의 소개로 신형식(申亨植)을 만나 돈을 모아 상해의 대한민국임시 정부에 보내어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토록 한다는 계획에 동의하였다. 이에 신형식에게서 평양결사단 청주지부의 명의로 군자금 출원을 요구하는 문서를 교부받고, 당일 밤 청주군 오합면(梧合面) 신평리(新平里)의 김상희(金相熙)에게 전달하려 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다시 동월 27일 신형식의 지시 에 따라 유영창과 함께, 청주군 남일면(南一面) 황청리(黃淸里)의 김재진(金在 振) 및 정인하(鄭仁河)에게 상해의 임시정부 요원임을 밝히며 군자금 출납을 요 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18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 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 및 공갈 미수로 징역 1년을 받았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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