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四用
(1889) ~ 1907-12-12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사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충남 부여에서 의병 지원활동을 하였다.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의 강제체결로 국권이 피탈되고, 이어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같은 시기에 한사용은 자신이 거주하던 부여군 초림면(草林面) 세동리(細洞里) 인근에 의병이 주둔하자 이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였다. 1907년 12월 경 엽총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약 70∼80여 명의 의병이 동 마을 부근에 출현하자 평소 배일사상(排日思想)을 가지고 있었던 한사용은 한기안(韓基安)·이장(里長) 한학삼(韓學三)·한성수(韓聖數) 등과 함께 의병에게 물자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활동을 통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 의병은 동년 12월 12일 세동리와 신송리(新松里) 경계에서 일본군 강경수비대(江景守備隊)와 약 1시간 여에 걸쳐 교전을 치렀고, 강경수비대는 동일 부여군 초림면 건평리(乾坪里)에서 숙영하였다. 이날 12일 늦은 밤 한사용은 한기안·한학삼·한성수 등과 함께 일본군 수비대에 몰래 접근하다가 발각되어 검문 당하자 탈주를 시도하다가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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