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承坤
1881-01-28 ~ (194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승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3년 장로교회 목사로 미국에 망명하였다. 이후 시카고 한인감리교회, 로스앤젤레스 한인감리교회, 단유바 한인장로교회 등에서 시무하면서 1919년에는 미국 흥사단(興士團) 본부 의사장(議事長)에 선임되면서 흥사단 활동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25년 1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흥사단 대회에 안창호(安昌浩)·김여제(金輿濟) 등과 함께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36년 5월 17일 개최된 북미대한인국민회에 대표로 참석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정후원과 항일독립운동 세력규합 등의 문제를 논의하였다. 그 직후인 1936년 6월경 귀국하면서, 국내에서 다시 동우회(同友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추진하다가 1937년 일경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1940년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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