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永育
1878-07-18 ~ 1935-11-2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영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5년 일제의 강제로 을사 5조약이 늑결(勒結)되자 국권회복을 위하여 경북 영덕군(盈德郡) 영해읍(寧海邑)에서 1906년 3월 6일 거의(擧義)한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에 입진(入陣), 도선봉장(都先鋒將)이 되어 30여명의 의병들과 함께 백암산(白岩山)·일월산(日月山)에 본영(本營)을 두고 영양(英陽)·영덕(盈德)·영해(寧海)·평해(平海)·울진(蔚珍) 등지에서 3년여에 걸쳐 왜군과 전투하였다. 김상태(金相泰) 형제의 간계에 빠진 의병장 신돌석이 참변을 당하여 순국한 후에는 재기를 위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8일 경북 영덕군 영해읍 장날을 기하여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장터에 모인 수천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며 경찰제복(警察制服)·경찰제모(警察制帽) 등을 빼앗고, 면사무소·학교 등의 기물을 파괴하며 시위하였다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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