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禮建
(1878)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韓禮健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예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강서군(江西郡) 강서면(江西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강서군의 만세운동은 평양보다 이틀 후인 1919년 3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기독교회측 최승택(崔昇澤) 등과 천도교회측 교구장 이진식(李鎭植) 등이 긴밀히 연락하여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장날인 3일 오전 10시 독립선포식을 거행하고 독립선언서 낭독과 독립만세를 3창한 후 거리로 나와 장터로 행진하였다. 이때 시장에 모였던 군중 약 4,000여 명이 합류하였다. 군중의 시위행진이 무르익자, 평양에서 부대를 지원받아 대기하고 있던 강서읍내 헌병분견소는 출동하여 행진을 가로막고 실탄사격을 가하였다. 그리하여 사망자 9명, 부상자 4명, 피검자 수 십명을 내었다. 당시 강서읍 감리교 목사였던 한예건은 이 시위에 참가하다 붙잡혀 1919년 8월 3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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