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玉山
1890-03-0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옥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3월경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서 맹호단(猛虎團)에 입대하고, 4월 의군단(義軍團) 제1분(分) 외교관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이후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 일대에서 대한총군부(大韓總軍府) 대원으로 가짜 독립군 처단, 군자금 모집 및 정보 수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3월 화룡현 삼도구(三道溝) 우심산(牛心山)에 근거를 둔 맹호단에 입대하였다. 1920년 음력 4월 맹호단이 의군단에 병합되자 의군단 제1분 사령관 김소홍(金素鴻) 부대 외교관으로 임명되었다. 1920년 음력 9월 왕청현 나자구에서 의군단ㆍ도독부(都督府)ㆍ광복단(光復團)이 연합하여 대한총군부(大韓總軍府)를 조직하자 동 부에 입대하였다. 그 후 김소홍과 함께 연해주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부대원들을 위한 방한 피복을 조달하였다. 1921년 5월부터 화룡현 일대에서 부대원 수십 명을 인솔하고 활동하다가 1922년 1월 18일 화룡현 요지구(요地溝)에서 간도총영사 두도구분관(頭道溝分館)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2년 6월 28일 수감 중 부대원들에 의해 탈옥했으나 1923년 12월 15일 연길현 도목구(倒木溝)에서 천보산(天寶山) 경찰분서원에게 다시 체포되었다. 이 사이 1922년 9월 25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이른바 살인미수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24년 1월 18일 청진지방법원(淸津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살인 및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9년 8월 10일 경성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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