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俊相
(185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준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859년경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에서 출생하였으며, 1903년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 총단장 한성선의 남편이며, 대한인국민회 집행위원장과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집행부 집행위원장 한시대의 아버지이다. 1910년 2월 10일 대한인국민회 새크라멘토지방회를 창립하고 총무에 임명되었고, 1916년 4월 맨티카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신한민보』 1911년 7월 26일자에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국민회 의무금을 내자고 논설을 게재하였다. 그리고 『신한민보』 1920년 9월 9일자를 통해 국민 모두가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받고 무기를 준비하여야만 한다는 독립전쟁론을 주장했다. 1922년 중국 상하이(上海) 국민대표기성회의가 성립되자, 다뉴바에서는 재무에 한준상을 선정하였다. 1925년 다뉴바지방회 3.1절 기념식에서 연설하였고, 1929년 딜라노·태프트지방회 3.1절 기념식에서 연설했으며, 1930년 딜라노·태프트지방회 3.1절 기념식에서는 임시주석을 맡았다. 1927년 8월 민족의 빈약한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설립된 어천생존회사의 임시대리인으로서 창립문을 발표하였다. 1930년 3월 1일 딜라노에서는 국내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는 공동회가 소집되어 한준상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0년부터 1930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애국금, 3.1기념금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납부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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