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淸汝
1863-06-04 ~ 1935-03-1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한청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문태수(文泰洙)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장수·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문태수는 경남 안의(安義) 사람으로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자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906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거의한 후, 전북 무주(茂朱)에서 의병 수십 명을 이끌고 덕유산으로 가던 중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여 여러 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하순에 전북 장수(長水)읍을 점령하고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다음해 1월에도 문태수 의진은 전북 무주군 부남면 고창곡(高昌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여 적군 40여 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여 정을 노획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2월 서울 진공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각 도의 의병진이 모여 13도 창의군을 편성할 때, 문태수는 호남창의대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한청여는 이같은 문태수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문태수 의진에 속하여 전북 장수군 계북(溪北)면 문성동(文城洞) 뒤의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1909년 5월 김준대(金俊大)·고명주(高明柱)·고원중(高元仲)·신치수(辛致守)·안왈오(安曰五)·심우상(沈尤相)·원도숙(元道淑)·조경화(趙京化)·하준태(河俊太) 등 2백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장수·용담 등 부근 촌락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 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태형(笞刑) 100도를 받는 고초를 당했다. 정부에서는 공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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