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君淸
1899-09-0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허군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12시 평안북도 선천군 신성학교(信聖學校) 집회당에 교사와 학생들이 집합했다.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이들은 선천 시내로 이동하며 만세를 외쳤다. 여기에 보성여학교(保聖女學校) 학생들도 태극기를 들고 합류했다. 이들은 오후 1시 독립선언식을 개최했고 2,000여 명의 군중이 주요 관청을 순회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에는 기독교도와 교사‧청년 등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참여했다. 오전에 업무를 마치고 정오 무렵 귀가하던 허군청도 그와 같은 시위를 목격하고 만세운동 대열에 합류했다. 그로 인하여 체포되어 신문조사를 받고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 압송되어 기소되었다. 1919년 4월 1일 ‘보안법 위반’으로 신의주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6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