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東奎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허동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3월경 왕청현(汪淸縣) 대감자(大坎子)에 근거를 둔 정의단(正義團)에서 재무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同年) 9월 이후에는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1 중부지방회장 대리·부회장·비서·향관(餉官) 등으로 활동하였다. 동년(同年) 10월에는 돈화현 지방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독립운동단체를 다수 조직하며,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할 목적으로 돈화현(敦化縣)에서 간민국(墾民局)을 조직하고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1년 1월경에는 동현(同縣) 양수천자(凉水泉子)를 근거지로 사관학교(士官學校)의 설립, 조선 국내 양안지방(江岸地方) 침입, 경찰관(警察官) 처단 등을 목적으로 조직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중령총회(中領總會)의 비서(秘書) 및 재무부장(財務部長)으로 군자금 및 독립군 모집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3년에는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대표로 참석하여 대표자격심사위원(代表資格審査委員) 및 생계과위원(生計科委員)으로 선임되어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활동하였고 1924년 8월경 국민위원(國民委員)으로 선임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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