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成燮
1893-07-20 ~ 1969-10-2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허성훼, 허성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허성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연백(延白)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수안군 도소면 대두리(遂安郡 道所面 大斗里)에 거주하였고 의용단 수안지단장(義勇團 遂安支團長)으로 있으면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추진하였다. 그는 3·1독립운동을 전후로 하여 3·1독립운동 안내 및 격문을 인쇄한 인쇄물과 태극기를 쌀상회를 경영하는 것을 활용하여 쌀자루 소에 감추어 주민들에게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1921년 2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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