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平順
(188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허평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허평순은 1907년 음력 9월 그믐께 박순근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 약 200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경기도 내의 가평군(加平郡)·고양군(高陽郡)·파주군(坡州郡)·양주군(楊州郡) 등지를 다니며 군자금을 모금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허평순은 박순근의진에서 나와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구성하고 1907년 음력 12월 5일경 약 8명의 의병과 함께 서울 동부(東部) 동소문(東小門) 밖 우이촌(牛耳村) 부근의 어느 촌락에 들어가 마을사람들에게서 군자금 40원을 거두기도 하였다. 이처럼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던 허평순은 1908년 북부경찰서(北部警察署)의 일본순사를 응징하고 체포되어 1909년 6월 3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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