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俊伊
1901-08-16 ~ 1968-10-0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현준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경산(慶山) 사람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경북 경산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탄압에 굴복한 대한기독교장로회측은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교회들은 신사참배의 예식을 거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경산의 평사교회·상림교회·봉회교회 등의 교회에 소속된 현준이 장로를 비롯하여 목사와 신도들이 일치 단결하여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라는 성경구절을 앞세우며 신사참배의 강요에 적극 반대하였다. 그러자 일경들은 이들 교회를 폐쇄시키기 위해 온갖 탄압을 자행하였다. 그럼에도 김선암 등이 굴복하지 않자, 일제는 급기야 교회안에 '조천(早天)기도회 강령'이란 제목 하에 조선독립만세·일본타도·영미만세·비밀엄수 등의 글을 써놓은 뒤 이러한 문구가 교인들에 의해 씌여진 것으로 몰아붙이는 간교한 계책을 동원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구실로 삼아 1943년 11월 17일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교인들을 체포하였다. 그도 이때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며 1년간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44년 11월 11일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7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