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鸞祐
미상 ~ 1908-04-16·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난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의병장으로 경기도 가평(加平)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제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같은 해 8월 「한일협약」을 강제하여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이어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였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과 친일주구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홍난우는 일본군을 축출할 목적을 가지고 의병운동에 투신하여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부하를 모집하여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8년 4월 16일 휘하의 의병 30여 명을 이끌고 경기도 가평군 마일동(馬日洞)에서 일본군 화천(華川)수비대와 교전하다가 부하 3명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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