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林
(188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洪立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갑산(甲山) 사람이다. 1919년 4월부터 의민단(義民團)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처음에는 재무부장으로 일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이 의민단은 3·1운동 이후 천주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단장 방우룡(方雨龍), 부단장 김연군(金演君), 참모장 김종헌(金鍾憲), 영장 허근(許根) 등이었다. 본부는 왕청현(汪淸縣) 춘화향(春華鄕)에 두었으며, 1920년 일본군의 간도출병 당시 무장대원 300명, 소총 400정, 권총 50정, 수류탄 480개를 소유하고 있었다. 1920년 3월에는 의민단에서 모연대장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때 함께 활동한 인물로는 단장 홍범도(洪範圖), 참모장 박경철(朴京哲), 결사대장 허근 등을 들 수 있고, 대원수는 600명이었으며, 본부는 왕청현 춘양사(春陽社) 북삼차구(北三 溝) 였다. 홍림은 1920년 3월 8∼10일 3일동안 합마당(蛤 塘)에서 북간도 동부·서간도·훈춘동부·노령의 일부 단체들이 모여 만주지역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을 도모하여 대표자회의를 할 때, 홍범도(洪範圖)·구춘선(具春先)·이범윤(李範允)·김광국(金光國)·서성권(徐成權)·황병길(黃丙吉)·전의근(全義根)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아울러 독립의군단도독부(獨立義軍團都督府)를 조직하여 200명 정도의 단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1921년 2월 중순 노령에 있는 독립정일군사령부(獨立征日軍司令部)의 명령을 받은 의용군단 재무부장 홍림은 부하 20여 명과 함께 연길현 숭례향(崇禮鄕) 토문자(土們子) 지방에 가서 과거 독립군부대들이 은닉해 놓은 무기와 탄약을 수합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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