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秀瑗
1896-07-27 ~ 1937-05-2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洪基守, 洪鍾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수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진주(晋州)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장로교회의 서기로 있던 1919년 4월 경남 진주 소재 광림학교(光林學校) 기숙사에서 강우석(姜佑錫)·여병섭(呂柄燮)·김정도(金正道) 등과 함께 비밀결사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동단은 이후 동지규합에 힘써 단원이 30여명에 이르렀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또한 그는 동년 6월 박성애(朴晟愛)·정성도(鄭聖道)·김정수(金禎洙)·강성화(姜性化) 등과 더불어 종교단체를 가장한 항일결사 경남전도회(慶南傳道會)를 조직하였다. 이때 그는 박인관(朴寅寬)·박승명(朴承明)이 평양에서 주도·조직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취지서를 모방하여 경남전도회의 취지서와 규칙을 작성한 후 600매를 인쇄하여 통영(統營)·해남(海南)·거창(居昌)을 비롯하여 경남 각지의 기독교 조직에 배포하였다. 경남전도회는 대한국민회 총무 박승명이 윤상식과 함께 동년 11월 상해에서 발행한 대한민보(大韓民報) 천오백부를 인수, 국내의 각 교회에 배포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는 일경에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37년 5월 일경에 다시 붙잡혀 악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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