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順義
1890-02-02 ~ 1959-09-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순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 은율(殷栗) 사람이다. 3·1독립운동 직전 천도교 황해도 교구 내에서 오영창(吳榮昌)·이경섭(李景燮)·방찬두(方燦斗)·한동익(韓東益) 등과 함께 천도교의 조직,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중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4월 5일 은율군에서 천도교구 천일기념식(天日記念式)을 이용, 수백명의 군중을 만세시위에 동원, 선두 지휘하였다. 1933년 9월 이후 천도교 구파에서 축왜독립(逐倭獨立)의 방법으로 멸왜기도(滅倭祈禱)를 비밀리에 시행·전개하자, 홍순의는 황해도내에 기도문을 작성·배부하여 교도들을 지도하였다. 또한 1937년 8월 최준모(崔俊模)·한순회(韓順會)·김재계(金在桂)·김경함(金庚咸) 등과 더불어 중·일전쟁 발발을 호기로 포착, 전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누어 특별희사금이라는 명목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로 하여 비밀리 324원을 모금, 전달하였다. 한편, 같은해 12월 20일 특별기도 실시를 협의하고 일제관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기도문구를 위장하여 황해도내 교도에게 교시, 격려하다가 1938년 2월 17일 밀고에 의해 붙잡혔다. 이로 인해 그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과 제령 제7호 위반으로 해주검사국에 송치되었으나 일경이 중·일전쟁 수행상 사건을 확대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 구속된 지 70일 만에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