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演欽
1885-05-21 ~ 1970-11-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연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홍연흠은 경북 김천군에서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의 8인조에 가입, 독립운동을 위해 자금을 납부·모금하였다. 흠치교는 1901년 강일순(姜一淳)이 세운 민족종교로 주문에 ‘흠치흠치(吽哆吽哆)’라는 말이 있어 그렇게 불리게 되었으며,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홍연흠은 1920년 7월 27일(음), 홍재훈(洪載燻)·이원봉(李遠鳳)의 권유로 군위군 부계면 동산동 홍정수(洪定修)의 집에서 홍석우(洪奭佑)·이기식(李基植)과 함께 일심동체임을 서약한 후, 8인조의 교도로 가입하고 홍재훈에게 치성비 20원을 기부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7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제령 제7호(정치범 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2년 8월 2일에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8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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