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鏞杓
1885-03-1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용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작된 3.1운동 고양군의 2곳에서도 나타났다. 3월 5일 이후 용강(龍江)·한지(漢芝)·독도(纛島)·지도(知道)의 학교나 마을 등지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23일에는 오후 8시부터 은평(恩平)·숭인(崇仁)·송포(松浦)·신도(神道)·용강 등 5개면의 10여 개의 마을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거나 산 위에 올라 횃불을 놓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은평면에서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녹번리(碌磻里) 주민 300명이 녹번고개(碌磻峴)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녹번현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해 26명을 체포하고 군중들을 진압했다. 역촌리(驛村里)에서도 주민 약 40명이 집합해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문도치(文道致)와 김춘수(金春洙) 등은 약 20명의 주민들을 이끌고 당제산(堂祭山)에 올라가서 불을 피우고 만세를 외치는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홍용표는 이러한 은평면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헌병분대에 압송되었다. 1919년 4월 1일 헌병분대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분대장에게 태 60도의 즉결처분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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