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원燮
(1875)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洪轅燮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원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평남 평양(平壤) 남산현교회(南山峴敎會)의 독립선언에 참여하고 만세운동을 벌였다. 남산현교회에서 독립에 관한 연설과 독립선언문 낭독이 있은 후, 감격한 군중은 만세를 부르며 큰 행열을 지어 대로로 나아갔다. 평양경찰서 앞에서 숭덕학교(崇德學校)와 천도교구당(天道敎區堂)으로부터 온 행열과 합세한 시위대는 도청, 재판소, 평양역 광장, 평양부청, 평양형무소 등 시가지를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7시 경에는 평양경찰서 앞에서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수백 명이 검거되었다. 밤에는 학생들이 다시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는 등 만세운동의 열기는 계속되었다. 시위에 참여하였던 홍원섭은 체포되어 1919년 7월 21일 평양복심법원, 1919년 9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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