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在文
1897-03-20 ~ 1958-07-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재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남도 밀양(密陽)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부산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해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의 기운이 확산되고 있을 무렵인 3월 11일, 부산의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학생들의 의거에 의해 경남지방에서도 항쟁의 계기를 만들었고, 또 이 고장의 자주독립의 항일의식을 더 한층 높여 주었다. 그러나 이 의거로 인해 일제에 의해 구금된 여학생들이 옥중에서 겪은 참형과 곤욕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이에 당시 부산공립보통학교(釜山公立普通學校)의 교사였던 그는 이 소식을 듣고, 학생인 배수원(裵守元) 등과 여러차례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회의를 한 후, 4월 3일을 기하여 기독교(基督敎)인들을 중심으로 의거하기로 하고, 또 민중의 독립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키로 하였다. 4월 3일 오후 2시 30분경, 그는 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좌천동(佐川洞) 거리에 세워두고, 수백명의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였으며, 시위군중은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는 그후에도 조국독립을 위한 열망을 버리지 않고, 독립투쟁을 계속하였으며, 1921년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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