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鍾彬
(1863) ~ (1920)·조선
이명·자·호 洪鐘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종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초산(楚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5일 전개된 초산지역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내 연통부(聯通府) 초산군 참의(參議)로 활동하엿다. 초산군의 독립만세운동은 당시 천도교(天道敎) 교구장(敎區長)이었던 이덕흡(李德洽)의 주도로, 1919년 3월 5일 천도교인과 기독교인들이 서로 합세하여 추진되어, 천도교인들은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시위군중들에게 배포하고, 기독교인들은 독립연설을 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던 홍종빈은 시민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운동을 부르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후 1919년 7월 임시정부의 국내 연통부 초산군 참의로 활동하였다. 연통제는 임시정부에 대한 선전, 통신, 연락, 독립운동 자금수집 그리고 친일파 총살, 밀정보고, 근거지 확보 등을 목적으로, 임시정부가 1919년 7월 1일부터 시행한 제도이다. 그는 연통부에 소속되어 임시정부 지원활동을 전개하다가 1920년 3월 경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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