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鍾揮
1903-05-16 ~ 1979-08-31·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종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27년 10월에 신간회 장성지회(新幹會長城支會)를 조직하여 조직부장에 선임되었으며, 이후 장성지방의 유지 100여명을 규합하여 조직을 확충하였다. 이듬해 10월에는 신간회 창립 1주년 기념행사로서 군중집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국권회복(國權恢復)'·'주권독립(主權獨立)'의 애국구호를 담은 전단을 인쇄하여 배포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이로 인하여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0년에는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농촌계몽에 전력하였으며, 신간회원 결사행동대(新幹會員決死行動隊)를 결성하여 전남 일대의 일제 관공서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다가 붙잡혀 6개월간 구금당하였고, 이듬해인 1931년에는 장성에서 효성단(曉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며, 1932년에는 농민운동의 일환으로 청년회(靑年會)·농민회(農民會)·협동조합(協同組合) 등을 결성하여 농민의 조직화와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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