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天植
(1884)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洪斗植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천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1년 서울에서 김진억(金鎭億) 등과 함께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ㆍ1운동 이래 독립운동에 뜻을 두어 만주에서 활동하던 임경호(林敬鎬),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연락원 김충규(金忠圭) 등과 교류하고 있었다. 1921년 4월 청량리 자택에서 김충규로부터 1920년 9월 이래 전북 부안(扶安)과 서울 등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던 김진억을 소개받았다. 이들과 군자금 모집 및 임시정부와의 연락에 관해 협의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연락자 임경호ㆍ최석천(崔錫天)을 김진억에게 소개하고 독립운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1921년 7월 김진억 등과 함께 서울 동대문경찰서 고등계에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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