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七星
1902-09-21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홍칠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 동평덕리(東坪德里)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입단하여 통신원(通信員)으로 문서 왕복과 기타 연락사무에 종사하며 주재소 공격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군비단은 서간도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로 장백현에서 조직되었다. 군비단은 3개 소대로 구성된 1개 중대로 편성되어 중대장은 이영식(李永植)이 담당하였고, 제1소대가 28명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1921년과 1922년에 걸쳐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며, 흥업단(興業團)ㆍ광복단(光復團)ㆍ태극단(太極團)ㆍ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등과 연합하여 지속적인 항일전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음력 9월경 중국 장백현에서 군비단 통신원으로 단원 간에 문서 왕복과 기타 연락사무에 종사하였다. 1922년 7월 말경 단장(團長) 윤덕보(尹德甫)의 명령에 따라 소대장(小隊長) 강승경(姜承京) 이하 38명과 함께 총과 폭탄 등으로 무장하고 국내로 파견되었다. 국내로 들어와 8월 5일 삼수경찰서(三水警察署) 영성주재소(嶺城駐在所) 일본 순사 1명을 사살하고 2명의 경관에게도 중상을 입혔다. 주재소와 경찰본서에 접속되는 전신전화선을 끊고 전주를 파괴했다. 1926년 11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36년 12월 1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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