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京善
1878-02-2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경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소속으로 일경(日警)과 교전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義兵運動)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다. 본부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었으며,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이념으로 하였다.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副總裁)는 백삼규(白三圭)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국내외에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지부를 설치하였는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는 관구(管區)를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남만지역의 환인(桓仁),장백(長白),무송(撫松),임강(臨江),관전(寬甸),집안(輯安) 등 10개 현에 지단을 세웠다.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거쳐 의군부(義軍府)로 발전하였다. 황경선은 평북(平北) 삭주군(朔州郡) 삭주면(朔州面) 동부동(西部洞) 출신이다. 1921년 1월 만주(滿洲)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독립단 관전현지단의 도검찰(都檢察)로 활동하였다. 동단(同團) 사무소에서 이현필(李賢必) 등과 회의를 하던 중 창성주재소(昌城駐在所) 일경(日警)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소위 대정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징역(懲役)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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