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大根
미상 ~ 1908-02-1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대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내정을 간섭하였다.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와 같이 국망(國亡)의 조짐이 심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1907년 8월부터는 해산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계층도 유림, 농민, 포수, 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 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국민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황대근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거의하여 국권회복에 나섰다. 그러나 1908년 2월 경북 영양(英陽)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험한 계곡인 영양군 수비면(首比面) 화랑동(花浪洞)에 매복하였다가 밀정의 밀고로 이를 탐지한 일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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