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東淵
1919-03-04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동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4년 3월 고성공립보통학교(高城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1935년 3월 고성공립심상고등소학교(高城公立尋常高等小學校) 고등과 1학년을 수료하였다. 1937년 4월 경성전기학교(京城電氣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가정 사정으로 중퇴하였다. 같은 해 9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김종희(金宗熙)의 권유로 비밀결사인 고성민족문학연구회에 가입하였다. 고성민족문학연구회는 비밀결사인 프로문학연구회가 재편된 단체였다. 이는 한국의 독립이 목표로 조선어 연구‧소설작품 교환‧정치 비판 등을 전개했다. 1939년 1월부터 고성군에 있는 고성공립심상소학교 대강간이학교(大康簡易學校) 강사로 일했다. 이때 한국인 아동이 한국어를 사용하게 했다. 같은 해 4월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시험에 불합격한 이후 일제의 교육제도에 더욱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였다. 황동연을 포함한 고성민족문학연구회 회원은 민족주의 문헌을 읽고, 자신들의 장착물과 한글 일기를 서로 교환하면서 민족의식의 발달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0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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