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마리아
(1865) ~ 1937-08-0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Maria Whang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마리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1905년 6월 13일 장남 강영승(康永昇), 강영승의 처 강원신(康元信), 차남 강영옥(康永玉), 장녀 강혜원(康慧園)를 데리고 도릭호로 하와이에 도착하여 사탕농장에서 일하였다. 1913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 아동들의 국어 교육과 일본상품 배척, 동포 구제를 목적으로 대한부인회(大韓婦人會)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부인회에 재봉소를 설치하고 남녀 양장을 제작 판매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수전위원(收錢委員)으로 활동하였다. 1914년에는 부인회 재무로 활동하며 회원들과 함께 서간도 재난동포에게 구제금 300달러를 송금하는 등 6년간 국내외 재난동포 구제사업을 하였다. 1919년 3월 3.1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3월 15일 대한부인회 명의로 모임을 소집하였다. 호눌룰루 국민회 건물에 모인 하와이 각 지방 여성대표 대표자 41명과 함께 공동대회를 열고 독립운동 후원금 모집과 적십자대 업무, 재난동포 구제를 결의한 뒤 29일 대한부인구제회(大韓婦人救濟會)를 조직하였다. 구제회가 조직되자, 부인회는 구제회로 통합되었다. 1928년 5월 호놀룰루(湖港)감리교회 부인보조회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회장 정월라(鄭月羅) 등과 활동하였다. 1930년 1월 하와이 한인의 정치기관 설립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봉대(奉戴)를 목적으로 29인과 함께 하와이 한인협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4월에는 하와이 와히아와 미감리교회 부인보조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와히아와 미 감리교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였다. 1936년 11월에는 구제회 회장으로 김구(金九)에게 100달러를 보내며 군인 양성에 써줄 것을 부탁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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