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甫翼駿
1905-09-27 ~ 미상·현대
이명·자·호 Yik Joon-, Hwangbo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보익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미주 대한인국민회 부회장을 역임한 황보정걸(皇甫正杰)의 아들이다.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923년 중국 남경청년회(南京靑年會)에서 공부하였다. 1924년 2월 15일 남경에서 흥사단(興士團) 단우로 입단한 뒤 제189단우가 되었다. 미국 유학을 목적으로 1926년 1월 미국으로 갔다.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1930년 6월 시카고의 노스웨스턴대학에 다니며 중서부학생회 연회에 참석하였다. 1931년 1월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흥사단 중서부대회에서 시카고지방단우회 재무로 선임되었다. 1932년 1월부터는 총무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국민회 시카고지방회 부서기와 서기, 시카고한인유학생회 재무로도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3년 7월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선거에서 재무로 선출되었다. 1935년부터 뉴욕으로 이전하여 활동하였다. 같은 해 2월 뉴욕에서 3.1 독립선언기념일을 대한인국민회를 비롯한 한인단체들이 연합하여 치르기로 합의하고 한인공동회를 결성하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해 3.1절 기념식에서 흥사단 대표로 참여하여 준비위원이 되었다. 1937년 4월 뉴욕지방회 상무위원으로 선정되었고, 12월에는 뉴욕한인연합중국후원회를 조직하여 중일전쟁을 치르는 중국을 후원하였다. 1938년 뉴욕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국후원회를 적극 후원하였다. 1939년에도 동 지방회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43년 말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 기관지 『독립』을 후원하였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7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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