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奭
1848-06-12 ~ 1919-03-06·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전북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일제가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을미사변(乙未事變)]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자, 황석은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무장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896년 전북도내 유림들에게 통문(通文)을 돌려 거의(擧義)할 것을 도모하였다. 이 계획이 실패하자, 장성(長城)에서 기우만(奇宇萬)이 거의할 때 참여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점차 가속화되고, 러일전쟁 직후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 야욕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에 황석은 의(義)로써 적신(賊臣)들을 단죄하고자 고광순(高光洵)·이석용(李錫庸) 등과 수 차례 거의를 도모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가족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다가 1919년 고종황제(高宗皇帝)의 붕어(崩御)소식에 자결하여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2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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