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璉性
1876-08-28 ~ 1943-05-1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연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1919년 당시 공주군 신하면 백교리(新下面 白橋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신상면 유구(新上面 維鳩)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인 황병주(黃秉周)에 의해 계획 추진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14일 유구 장날 약 5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다가 주동자인 황병주가 일경에 연행되자 구금자인 구출을 위하여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때 그는 동지 박준빈(朴準斌)과 함께 황병주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여 만일 석방하지 않으면 군중은 해산하지 않겠다고 항의하면서 주재소 기물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기세당당하던 군중은 증파된 일경에게 저지되었고 그를 비롯한 많은 주동인물들이 붙잡혔다. 그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7월 20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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