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義承
(1853) ~ 미상·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의승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28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황해도 일부 군(郡)에 배부됐다. 2월 28일 연백(延白)·해주(海州)·서흥(瑞興), 3월 1일 수안(遂安)·옹진(甕津)·황주(黃州), 3월 2일에 곡산(谷山) 등에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서」가 도착해 배포됐다. 3월 1일 해주 남본정 교회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고 3월 2일 옹진과 황주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금천군에도 3월 3일 전후에 「독립선언서」가 도착했다. 3월 3일 오후 서천면(西川面) 시변리(市邊里) 시장에서 천도교도 2명이 게시판에 「독립선언서」를 부착하려는 것을 발견한 시변리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이들을 체포하여 구금했다. 구이면(口耳面) 미당리(美堂里)에서는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덕안(德安) 헌병주재소 헌병들에게 사전에 탐지되어 독립만세를 외치지 못했다. 그리고 월성면 상리에서도 독립만세 운동이 추진되었다. 황의승(黃義承)은 6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20대의 황인섭(黃仁攝)과 김구락(金九洛)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종전 토산(兎山)의 중심지인 월성면의 당관리(堂官里)로 나아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토산헌병주재소 헌병들에게 사전에 탐지되어서 체포됨으로써 독립만세 운동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황의승은 토산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고 해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압송됐다. 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고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8월 28일 고등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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