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正杰
1888-10-21 ~ 1938-06-1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정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7년 5월 중국 길림성(吉林省)에서 정의부(正義府) 유하지방(柳河地方) 대의사(代議士)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길림성 화전현(樺甸縣)에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로 참의부(參議部)ㆍ신민부(新民府)와 함께 3부로 통칭되었다. 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ㆍ의성단(義成團)ㆍ광정단(匡正團)ㆍ노동친목회ㆍ고본계(固本契)ㆍ대한독립군단ㆍ학우회 등이 연합해 결성되었다. 중앙집행위원장 이탁(李鐸), 총무위원장 김이대(金履大), 군사위원장 겸 사령장(司令長) 지청천(池靑天), 재무위원장 오동진(吳東振), 민사위원장 김호(金虎), 법무위원장 이진산(李震山), 외무감 현익철(玄益哲), 총무감 최명수(崔明洙), 참모장 김동삼(金東三), 사령부관 정이형(鄭伊衡) 등이 중심 인물이었다. 또한 흥경현(興京縣)에 흥화중학(興和中學), 유하현(柳河縣)에 동명중학(東明中學)를 설치하였으며, 화성의숙(華成義塾)을 설립하고 독립군 주력을 양성하였다. 한인 농민들의 생활안정과 독립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만주와 국내의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9년 4월 그 중심 인물들이 국민부(國民府)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황정걸은 1927년 5월 9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5월 29일 철령영사관(鐵嶺領事館)으로 압송되었다. 1927년 8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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