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贊文
미상 ~ 1924-05-2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찬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참사(參士)로 활약하였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재기한 남북 만주 각지의 독립군들은 1921년 이후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하였다. 왜냐하면 종천처럼 각 지역별로 분산되고 그 이념마저도 분리되어서는 효과적인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1922년 2월에 이르러 남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부대 대표들이 관전현(寬甸縣)에 모여 남만통일회의를 개최한 결과 대한통의부를 조직하였다. 황찬문은 1923년 바로 이같은 통의부의 참사로서 이성규(李成奎) 등과 함께 평북 의주군과 용천군(龍川郡)에 출동하여 군자금 모집활동과 적경(敵警) 사살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는 1924년 5월 29일 용천군 양서면(楊西面)에서 적경 60여명과 전투 중, 적 8명을 사살하고 현장에서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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