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學奉
(1902) ~ 1929-11-2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황학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초산(楚山) 사람이다. 1923년 1월 남만에서 김승학(金承學)·채찬(蔡燦)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참의부에 가입하여 유격대 참사(參士)로서 활동하였다. 참의부가 임시정부 직할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개편된 뒤에는 제4중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1923년 1월경에는 송익순(宋益淳)과 함께 위원(渭原)지방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였으며, 1924년에 다시 국내에 진입하여 김석조(金錫祖)·김수명(金洙明)·김정수(金晶洙) 등과 함께 초산·벽동(碧潼)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일제 앞잡이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일경의 마차를 습격하는 등 계속 활동하다가 마침내 체포되어 1929년 8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24일 형이 확정, 11월 27일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3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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